劇評

F/Tで上演された各作品、企画についての劇評アーカイブ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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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경쟁의 시대, 바야흐로 재현 전략

김남수

1.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남자 주인공이 충고하듯이, 바깥에서 온 사람의 감각에는 허락되는 것과 허락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본다고 해도 보지 못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허락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본다는 것은 재현된 것을 넘어서 재현되지 않은 것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메를로-퐁티는 "보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본다는 것이 곧 신체가 그 체험의 영역에 개입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가령, 히지카타 타쓰미가 죽음의 심연에서 마치 타버린 신체를 일으켜 세우는 그 섬광 같은 한 순간을 생각해봅시다. 그 장면을 본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함께 산다는 식으로 메를로-퐁티와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신비주의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사실 이 부토의 창조자는 히로시마의 탄화된 신체로부터 비인간의 생명력을 호출하여 인간의 영역으로 출현시켰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죽음과 삶,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암흑과 한줄기 내면의 빛, 느림과 내재된 역동 같이 끝없이 간극을 낳을 수밖에 없는 대칭성의 구도는 그의 부토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호소하는 힘입니다.
어쩌면 저는 페스티벌 도쿄에서 그런 것을 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을 갖게 된 것은 주관적인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행사의 예술감독 치아키 소마 씨 덕분입니다. 그는 2011년 봄의 서울에서 만났을 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래는 그 당시의 기록입니다.

국립극단 앞마당에서 나는 페스티벌 도쿄의 예술감독 치아키 소마 씨와 그의 동료들을 만났다. 그들은 일본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극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문화에 한 번도 오염되지 않은, 어떤 익명적 생명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치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치아키 소마 씨가 했던 일련의 이야기였다. 그는 3.11이 연쇄반응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을 때,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후, 페스티벌 도쿄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아티스트들을 모두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나에게 이 광경은 사방에서 모여든 초원의 전사들이 벌이는 몽골식의 회의, 즉 쿠릴타이를 연상시켰다. 비상 사태에서 엄중한 표정의 얼굴들이 중대한 문제를 논하는 그런 자리를 상상해보라. 그러고나서 페스티벌 도쿄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그랬다.
"우리에게 도쿄는 이미 홀로코스트나 나가사키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한 송전을 받고 있는데, 전기 먹는 괴물처럼 극장에서 정식의 연극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될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선언하고자 합니다. '극장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이것은 데라야마 슈지의 패러디 같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기도 합니다. 연극이 극장과 일체라고 생각해온 것은 자명한 것 같았지만, 다시 한번 회의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들은 연극을 하고자 했을 것이고,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진행된 연극도 분명히 연극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조건에서 연극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요, 라고."

나는 치아키 소마 씨가 던진 '연극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요' 라는 대목에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21세기로 건너오는 동안, 많은 것이 종언으로 선언되었다. 하지만 문화와 자연의 경계 또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인간들, 벼랑 끝에 선 인간들의 현시, 벼랑 끝에 서서 내뱉는 숨결의 현시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여전히 연극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연극은 처음부터 자기보존의 몸부림 너머에서 고유한 어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연극이 해야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내각관방 자문관 자격으로 왔던 히라타 오리자 씨의 강연에서도 들었고, 일본 제로세대의 감수성을 몸짓과 언어의 불일치하는 대위법적 리듬의 연극으로 보여주는 도시키 오카다 씨의 인터뷰에서도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지난 1년 동안을 지배했던 것은 치아키 소마 씨의 '연극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연극은 본래 무엇이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일본에서 개최되는 메이저급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작품들이 '가난한 연극' '벌거벗은 연극'의 자태로 거리로 나간다니, 이제 한국 연극은 이러한 절대적 타자의 흐름을 어떻게 지켜보고 함께 고민할 것인가. 아니, 이러한 흐름들을 감지나 하고 있는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엄습한다.

한국 공연예술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공연 축제인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라는 식으로 지난 십년을 허송해왔는데, 결국 많은 작품들이 배치되어 만들어지는 '별자리' 타입과는 거리가 먼 철학의 빈곤이 두드러졌습니다. 물론 페스티벌 봄 같이 장르를 초월하여 예술과 정치 사이의 새로운 모험을 진행하는 행사가 있지만, 이것은 '다원예술'이라는 이념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는 연극계의 바깥, 좋게 본다고 해도 연극계의 가장자리라는 뉘앙스를 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측의 시야가 너무 좁았다는 자책이 듭니다. 즉 일본에서 벌어지는 세계사적 사건의 흐름을 눈여겨보지 않는 '이웃'으로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보기의 윤리학'에 관한 문제이며, 존재론적 위기에 처한 타인의 얼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성찰의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치아키 소마 씨의 이야기가 저의 눈을 틔워주었고, 그 내용은 제 마음 속에서 페스티벌 도쿄의 마니페스토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벌거벗은 상태'의 연극, '예외 상태'의 연극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호기심이 부가되었습니다. 그것은 재현을 둘러싼 공연예술의 해묵은 쟁점을 단번에 뛰어넘는 문제의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3.11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지구 차원의 대재앙이나 그로 인한 예술의 퍼포머티브한 전환은 신기원을 이룰 것 같았습니다.

2.
아직 페스티벌 도쿄 자체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도쿄에 체류한 체험을 상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있습니다. 이케부쿠로 근처의 올빼미 아이콘은 가까운 곳에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극장이 있음을, 산책 중에 만나는 묘전사(妙典寺)는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열흘 남짓 비평 레지던시의 일환으로 머무르는 동안, 도쿄 여기저기를 걸어다녔고 이 거대 도시는 적어도 겉보기에는 일상을 회복한 듯 보였습니다.

수면 아래로는 많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슈피겔 온라인 국제판(2011년 4월 12일)은 '원자력 사막'이란 제목 하에 그때까지 인류가 '원자력 다루기'에 어떻게 실패해왔고, 그로 인해 영구적인 오염과 범죄를 저질러왔는가를 고발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이 논조는 도쿄에서 세슘과 스트론튬의 발견, 원전의 간헐적 온도상승, 그리고 사실상의 후쿠시마 포기라는 지금까지 진행중인 일련의 사태와 동행했습니다.

세계적인 반핵 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 씨는 다음과 같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유니크한 말을 상기시켰습니다.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을 싸고 돌아가는 경계입니다. 이를테면 이 말은 영어에서 'environment'라고 하는데, 이것도 인간을 둘러싸는 것이라는 뜻이고, 독일어의 'Umwelt'도 둘레의 세계라는 뜻이니까 인간이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일부가 '원자력 사막'으로 변해가는 그 배후에는 독일 철학자 로버트 융크가 말하는 '원자력 제국'이 버티고 있습니다. '원자력 제국'이란 의미는 원폭이 보여준 재앙에 대한 공포가 인간적 컨트롤에 의해 안전한 미래 에너지원이 된다는 기본 전제 자체가 한 국가 내부에서, 나아가 국제적 커넥션 차원에서 그동안 많은 상징조작이 이루어졌고, 이데올로기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가는 똥을 낳는"(백남준) 원자력 발전이 경제성이 없음에도 국가의 병리적 정보통제 아래 지속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원자력 물신=국가주의라는 등식은 참 깨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가지카와 유우 씨는 "후쿠시마는 어디에든 있다" 라는 말로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공통된 문제임을 다시 상기시켰고, 가라타니 고진 씨는 "특별히 강제된 것도 아닌데 원전에 반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하에서 데모라는 퍼포먼스로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상의 수면 아래에서 문득 출현하는 말과 행동은 재현의 위기 이후 훨씬 더 퍼포머티브한 포스에 주목하고 있는 예술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적어도 한국과 같은 예술적 정치적 조건에서 이러한 일본의 많은 석학들의 행동주의는 공감을 낳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페스티벌 도쿄에 접근해 들어가는 두번째 전제가 되겠습니다.

저는 프랑스의 미학자 랑시에르가 예술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 '불화'를 생산하는 것에 주목하라는 약을 주는 동시에 직접적인 참여는 예술과 관계가 없다는 병도 주고 있음을 압니다. 이러한 이중구속의 담론 때문에 랑시에르가 플럭서스나 요셉 보이스 같은 네오-아방가르드의 '참여' 개념을 보다 활성화시킨 소위 관계미학 - 미술 안에서 '연극적인 것'의 실험이 돋보이는 신(scene) - 의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와 논쟁이 붙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접합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영역이며, 그 예술 실천의 영역에 대해서는 징후적인 판단이란 것이 있습니다. 가령, 알랭 바디우는 <비미학>에서 프랑스의 연출가 앙투안 비테즈를 인용하며 연극의 목표는 우리에게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우리를 역사와 삶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대 위에" 도래하기 전에는 미리 존재하지 않지만, 연극과 비연극은 교환이 가능합니다. 비연극이란 연극의 '예외 상태'로서 끊임없이 연극 내부로 삼투되곤 하기 때문에 언제나 징후적인 판단에 속합니다.

말하자면, 저에게 이케부쿠로 근처에서 발견한 부엉이 아이콘이나 묘전사라는 오래된 명패는 항상 이미 징후적으로 연극의 환경의 일부였고, 그럼으로써 연극의 일부였습니다. 이는 연극이 특권적인 어떤 영역으로 더 이상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페스티벌 도쿄의 부가적인 행사로 진행했던 독일의 세계적인 연극 이론가 한스 티에스 레만 씨의 특별 강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떠난 별개의 차원에서 '포스트드라마틱 씨어터'를 찾지 말라고 하면서 연극의 기원을 되물었습니다. 이미 <시학> 안에 '카타르시스'라는 개념 자체가 재현적이며 감정이입적인 차원을 벗어나 새롭게 재발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은 이미 개방되었고 확장되었습니다.

3.
페스티벌 도쿄에서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피첨 극단의 <부활>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술감독 치아키 소마 씨가 선언한 "거리로 나가자" 라는 수행문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도쿄 타워가 바라보이는 공원이라는 야외 공간에서 후쿠시마의 '씻김굿' - 억눌린 한을 푸는 샤머니즘 제의 - 에 해당하는 연극이 펼쳐졌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관심이 갔던 것은 나카자와 신이치의 소위 대칭성 인류학이라는 개념을 변용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는 그런 측면이 존재했습니다. 후쿠시마의 재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을 때, 유기된 개들은 초혼에 힘입어 도쿄까지 진출했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대칭적 관계가 무너져버린, 결국 '압도적인 비대칭'의 상황에 처한 이 전면적인 조건화는 3.11에 대한 일본 연극의 응답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히노마루와 자위대로 상징화되는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의 악령이 출몰하는가 하면, 분열증을 앓는 히스테리적 참극과 자살 충동이 펼쳐지고, 동시에 후쿠시마 치유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병치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복잡한 상황이란 것인데, 이는 가라타니 고진 씨가 갈파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을까요. "금년 3월 이전까지 대체 무슨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리먼쇼크 이후의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소자화, 고령화에 의한 일본경제의 피하기 어려운 쇠퇴 그리고 저성장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얘기들이었습니다." (<주간독서인> 2011년 6월 17일자 인터뷰)

간단히 말해서 일본이 처한 비대칭적 재앙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해당되는 것인데, 결국 복수의 재앙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고, 급기야 재앙들끼리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에서 갈등의 사슬로서 서사를 이루는 것은 결국 이러한 재앙 경쟁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저성장, 하류, 제로 같은 말들에 어느덧 익숙해진 듯하지만, 새로운 재앙이 밀어닥치면서 재앙의 항구적인 시스템을 재환기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그런 의미에서 비대칭성과 대칭성이 길항하는 연극의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것은 아즈마 히로키 씨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작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로부터 비롯된다고 보는 '해리적 현상' - 단기기억 단절 현상 - 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오히려 조각난 전체로서 재앙들의 경쟁 구도가 빚는 정치적 차원을 결국 인간과 자연 사이의 대칭적 운동으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가 연속적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경유하다 보면, 우리는 <부활>이 "보는 것은 사는 것이다" 라는 체험적 영역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장소특정적(site-specifec) 작업인 동시에 재현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순적인 것으로서 상충하기 마련입니다. 미술이론가 권미원 씨는 <한 장소 그 다음 한 장소>라는 저서에서 장소특정성이란 결국 유동적인 장소의 의미를 통해 순간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소'와 '공간'이 전혀 다른 의미 차원임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부활>은 연극 무대라는 '공간의 대용'으로서 공원을 사용한다는 다소 헐거운 사고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소는 그 자체의 기억과 역사를 품고 있는 주름 공간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재현적 공간 연출과는 상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극장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라는 선언이 의아한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재현의 완성도를 위해 연극 장치를 채워서 채우려고 하지만, 이미 개방된 야외 공간이란 조건은 무한해진 다음이었습니다. 갈수록 그 장치들이 스펙터클해지면 해질수록 공간은 더욱 확장되어버렸습니다. 이는 연극을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항이기도 할 것입니다. 재공연에서는 - 만일 있다면 - 이러한 사항을 검토하여 경쟁중인 재앙들의 비대칭적 압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칭성의 실재적인 운동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외에도 타카야마 아키라의 <레퍼렌덤 프로젝트>라든가 카오스 라운지의 <카오스 엑사일> 같은 장소를 이동하거나 장소특정적 성격의 전시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이동하는 트럭 안에 장치된 인터뷰 영상을 관람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일본이 처한 현실에 대한 청소년들의 의견을 묻고 답하는 인터뷰 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트럭의 최종 목적지는 후쿠시마로 특정되어 있었습니다. 후자는 도쿄 시내를 유동하는 전시로서 후쿠시마의 재앙으로 소멸해버린 유년의 기억들을 물질화하는 전시로 생각되었습니다. 인형, 장난감, 소품들이 대량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을 회고하는 영상이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타입은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지만, 후쿠시마로 인한 트라우마를 네오-아방가르드의 전형적 '이동극장'(백남준) 방식으로 재설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공연은 애초 치아키 소마 씨의 얘기와는 달리 정식의 극장 공간에서 펼쳐졌습니다.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초의 근본적인 테제를 던지는 방식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그러한 전환이 낯설게 느껴진 것도 솔직히 사실이었습니다. 미야자와 아키오의 <토탈 리빙 1986-2011>은 체르노빌의 악몽으로부터 후쿠시마의 재앙까지 연결하는 연극을 표방했는데, 카메라가 공연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면서 현란한 관점이동이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단지 자막이 없어서 희곡 - 행동의 구조이자 시공간의 디자인 매뉴얼 - 의 전모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의 외부자로서는 다수의 카메라를 장치화한 수사학적 과잉이 거슬리게 느껴졌는데, 이것이 얼마나 왜곡된 감상이었는지는 직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카자키 극단의 <반구형의 적과 흑>에서도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신체가 끊임없이 유동하거나 경련하는 공연들이 눈길을 잡아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수한 바나나 여학생반>이라는 콜렉티브가 토해낸 공연은 일본 팝컬처와 무정부주의적 광란을 혼합하여 극단적인 에너지 분출을 꾀하는 듯했습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결국 너와 나의 차이도 무화시키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빠른 비트의 음악과 사이키 조명으로 공간을 재설정하고, 코스프레부터 집단 난교 코드까지 판단상실의 영역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기 위해 객석으로 난입하여 관객과 '불편한 대면'도 서슴지 않고, 또한 물과 야채, 쓰레기까지 투척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무정부주의적 혼돈은 이 콜렉티브가 후쿠시마라는 메울 길 없는 심연을 향해 던지는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왜 실재가 아니라 환상인가 하면, 이것은 재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현으로서 매우 극단적이지만, 그것은 재현의 영역 바깥으로는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바나나 여학생반>이 여전히 포스트모던의 노벨게임 같은 코드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강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해리적인 마음의 움직임"(아즈마 히로키)은 엿보이지만, 그것이 재현의 구속복을 찢고 그 바깥으로 나아가는 스캔들까지는 의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타쿠 문화가 공연 예술에서 그 '구속복 찢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충동의 자유분방한 힘을 통해 초월적인 합일로 나아가자고 제안하는 결정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강렬하고 광란적인 퍼포먼스가 미학과 정치라는 차원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인 것 같습니다. 이 거대한 카오스가 사실은 내부의 정체성을 파열시키고 새로운 미지의 집합체 혹은 사회체로 다시 탄생한다고 속삭이는 것조차 연극의 재현 전략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재앙 경쟁 시대에 처한 연극의 재현 전략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놀랍도록 치밀하게 구성된 카오스, 재편된 카오스이지만, 여전히 작은 공명장치로서 극장의 재현에 그친다면 그것은 표현된 광기라기보다는 연출된 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기는 오히려 극단적인 이성의 소산이며(체스터턴), 이처럼 표현주의적으로 구현된 광기는 후쿠시마라는 거대한 구멍을 메울 길 없는 환상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는 환상은 생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후쿠시마는 얼마나 그 광기의 아가리를 확장시켜 갈까요. 그러한 재앙의 공포 앞에서 재현적인 포즈는 다소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시라이 쓰요시의 라는 무용 공연에서 "몸이 곧 거리이며 극장이다" 라는 테제를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당시의 기록입니다.

내리누르면 슬슬 아래로 내려가는 공기인형처럼. 손, 허벅지, 어깨, 가슴 부위의 허공을 건드리면 순간 움츠러드는 함수초처럼. 권력을 뺏고 빼앗기는 관계를 따라 공기인형과 함수초가 순환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눈이 없는 애벌레처럼. 몸 여기저기를 두드리면 물잔 속에 떨어진 숟가락 소리처럼. 사물에서 생명까지 이어지는 물그림자를 따라 애벌레와 숟가락 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천정에 맺힌 물그림자가 요동칠 때마다 그 안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서로 몸을 섞는다. 물감도 없이 섞인 그 요동에 내 몸의 그림자를 보탠다. / 첫사랑은 트라우마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번번이 되돌아온다. 내 발등에서 쨍그랑 소리가 나는 것은 일주일 동안 상온에 놓아둔 물잔 속으로 숟가락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건드리면 움츠러들지만, 바나나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다. 기어서 넘어가는 애벌레에겐 여전히 눈이 없고, 좌우의 뺨을 손등의 바람으로 휙휙 가벼운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하는 소녀에겐 더 이상 꿈이 없다. 물이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그저 칼리여신처럼 자기가 낳은 생명들을 죄다 먹어치울 때, 물그림자는 얼마나 숭고한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시라이 쓰요시 씨의 안무는 주름진 작은 몸들이 떨판으로서 어떻게 리듬의 작은 서사들을 낳는지, 그리고 빈 중심으로서의 몸이 흔들리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쓰요시 씨에게는 주름진 작은 몸들로 구성된 탁월한 몸의 안무가 가능했는데, 유동하는 몸이 떨리고 변형되는 시간 동안에 세계 역시 그에 감염되었습니다. 그 주름진 작은 몸들이 펼쳐지는 불연속적 단편적인 시간 동안 후쿠시마라는 부호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느새 천정에서 흔들리는 물그림자는 보르헤스의 알렙처럼 후쿠시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춤의 관성이 갖는 어쩔 수 없는 여파로 다소 길어지고 반복되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 작품의 반향은 놀라웠습니다. 신체에 침전된 기억과 무의식이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니, 우리가 귀를 기울여서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 신체의 언어와 그것이 전달하는 신경의 신호 그리고 문화 바깥의 자연의 불가피한 존재를 입증해가는 방식은 비틀리고 뒤틀린 세계의 경계면에서 '타인'으로 살고 있는 '예외 상태'의 인간 존재를 출현시켰습니다.

'원자력 사막'과 '원자력 제국'이란 말조차 굳어진 체계로 작용하는 유동하는 신체의 세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후쿠시마 프레임에 명시적으로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생명의 정치학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페스티벌 도쿄는 우여곡절은 있으나,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연합하면서 공연예술의 진정한 공동의 언어를 추구하려는 패러다임 제시가 돋보입니다. 이것은 개별적인 작품의 리뷰라는 차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차원입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알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일에서조차 완벽하게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체 현상과 관련해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건이 현실화되는 재앙이 신체들의 혼합과 사물의 상태로 이끌어내는 시대는 분명히 힘든 시기입니다. 거꾸로 본다면, 그러한 시기이기 때문에 예술의 공동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좋기도 합니다. 재현 체계의 위기는 분명히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생각됩니다. 페스티벌 도쿄가 2011년 고뇌하고 결단했던 그 문제의식이 올해는 새로운 진전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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