劇評

2012年2月

F/Tで上演された各作品、企画についての劇評アーカイブです。
カテゴリ内の作品別、言語別での選択が可能なほか、各記事のタグを選択すると条件に応じた記事が表示されます。

The Theater of the Disaster: What Can We Say about Pure BANANA girls class and Fukushima?

Hyun-Suk Seo

The disaster does not put me into question, but annuls the question, makes it disappear--as if with the question, "I" too disappeared in the disaster which never appears. The fact of disappearing is, precisely, not a fact, not an event; it does not happen, not only because there is no "I" to undergo the experience, but because there cannot possibly be any experience of it. - Maurice Blanchot

続きをよむ

災難競争の時代、まさに再現戦略

キム・ナムス

 映画《Hiroshima, Mon Amour》で男性の主人公がアドバイスするように、外から来た人の感覚には許されることと許されないことがあります。即ち、すべてを見ても、見なかったこと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許されたことは目に見えるが、それがすべてではないのです。許されなかったものを見るということは、再現されたものを超えて再現されなかったものと一緒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続きをよむ

재앙 경쟁의 시대, 바야흐로 재현 전략

김남수

1.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남자 주인공이 충고하듯이, 바깥에서 온 사람의 감각에는 허락되는 것과 허락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본다고 해도 보지 못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허락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본다는 것은 재현된 것을 넘어서 재현되지 않은 것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메를로-퐁티는 "보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본다는 것이 곧 신체가 그 체험의 영역에 개입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예를 들 수 있을까요. 가령, 히지카타 타쓰미가 죽음의 심연에서 마치 타버린 신체를 일으켜 세우는 그 섬광 같은 한 순간을 생각해봅시다. 그 장면을 본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함께 산다는 식으로 메를로-퐁티와 거의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신비주의가 아니라 실재입니다. 사실 이 부토의 창조자는 히로시마의 탄화된 신체로부터 비인간의 생명력을 호출하여 인간의 영역으로 출현시켰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죽음과 삶,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암흑과 한줄기 내면의 빛, 느림과 내재된 역동 같이 끝없이 간극을 낳을 수밖에 없는 대칭성의 구도는 그의 부토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호소하는 힘입니다.
어쩌면 저는 페스티벌 도쿄에서 그런 것을 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을 갖게 된 것은 주관적인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행사의 예술감독 치아키 소마 씨 덕분입니다. 그는 2011년 봄의 서울에서 만났을 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래는 그 당시의 기록입니다.

続きをよむ

舞台芸術の最先端、災難のカオスを再現するー日本の代表的なダウォン芸術フェスティバル、Festival/Tokyo

ソ・ヒョンソク

フラッシュバック1

今村昌平監督の「カンゾー先生」の最後のシーン。職人精神で一生を生きてきたある島の医者が、自分を愛する女性と舟遊びに行く。突然海の向こうから第二の太陽が上がる。この奇妙な何かが歴史を変えた原子爆弾であるということが知られないまま、映画は幕を閉じる。(この映画はこのシーンの直前まで物語の背景が1945年だということははっきりしないので、赤い光は観客にも突然のことである。)無知の重さは一生守ってきた知性と熱情を空虚なものにする。「歴史的な現実」は皮膚と感覚を占領しながら一瞬で日常に浸透するが、相変わらず理解されないばかりだ。

続きをよむ

犬死にのために、臭いものにはフタを――ピーチャム・カンパニー『復活』

堀切克洋

1.
原稿執筆がおおいに遅れてしまった。

当初はやわらかい口調だったフェスティバルの担当者からの催促も、冬の訪れとともに次第に厳しさを増し、最終的には「いい加減にしてくれませんか、ホリキリさん」という感じになって現在に至っている。おそらく、この企画に原稿を依頼されることは、もう二度とないだろう。この間、東京にはめずらしく雪が積もり、そして解けていった。

正直に言えば、この文章で扱うことになっているピーチャム・カンパニーの『復活』は、昨年秋のフェスティバル/トーキョーで最も面白いと感じた作品だった。たとえわたしが、この欄で扱っている鳥公園とピーチャム・カンパニー、そしてwonderlandの劇評講座で扱ったジェローム・ベルPort Bの作品以外には、わずか1本(バナナ学園)しか見ていなかったとしても。

続きをよむ

カテゴリ